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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각 프로야구 팀별 코치진 - 우리

우여곡절이 많은 팀입니다.
삼미 - 청보 - 태평양 - 현대로 오기까지 인천을 연고로 만년 꼴찌에서 '명가'라는 명칭까지 얻고,
여기에 모기업의 파산으로 결국 연고지마저 버리며, '우리'라는 낯선 이름까지 달게 된 팀입니다.
아직도 많은 인천분들은 연고팀인 sk 보다는 현대를 더욱 그리워 하시는 분들이 많은걸 보면,
그만큼, 4회 우승에 빛나는 현대 유니콘스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시즌 자칫 7개팀으로 출발할뻔 했던 시즌. 가까스로 센터리얼 이라는 투자회사에 인수가
되고, 메인스폰서로 우리담배 가 선정되면서, 팀명도 '우리 히어로즈'가 되었습니다.
지역을 연고로 확실한 색을 가지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너무 낯선 팀이 되버린거죠.
메인스폰서에 따라 팀명이 바뀌기 때문에 향후에는 또 어떤 팀명을 달게 될지...

하지만, 선수층만은 예전 명가 현대시절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뛰어난 실력을 갖춘
수준급 선수들이 많았던 터라 팀이 아닌 선수를 응원하시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비록 7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실력만큼은 아직 죽지 않은 팀,
갈길 바쁜 상위 팀들에게 고춧가루역활을 제대로 해주고 있네요.


수석 코치 : 이순철 (61년생)


- 트윈스 시절 이순철 코치. 항의 하는 모습이군여.

1985 - 1998  해태 타이거즈 선수
1998            삼성 라이온즈 선수
1999            삼성 라이온즈 1군 주루코치
2000            LG 트윈스 2군작전, 주루코치
2003            LG 트윈스 1군작전, 주루코치
2004 - 2006  LG 트윈스 감독
2007            MBC ESPN 야구해설위원
2007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회 위원
2007            베이징 올림픽 야구대표팀 상비군 작전 수비코치
2008            우리 히어로즈 수석, 주루 코치

1985  신인왕, 최다득점 1위
1988  최다득점 1위, 최다도루 1위, 골든글러브 수상
1991  최다도루 1위, 골든글러브 수상
1992  최단안타 1위, 최다도루 1위, 골든글러브 수상
1993  골든글러브 수상


해태 시절 군기 반장으로 불같은 성격과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를 이끌었던 이순철 코치.
조계현, 한대화, 이종범 등 당시 최강 해태를 만드는데 당당히 일조했던 선수였습니다.
원래는 3루수였으나 한대화에 밀려 외야로 전향했고, 능숙한 주루플레이와 빠른 발로 상대
투수를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통산 타율 0.262  안타 1252  타점 612  도루 371 (도루는 역대 4위)

데뷔 첫해부터 신인왕을 차지하며 주전으로 활약한 그는 빠른 발로 수시로 도루를 감행하였고,
외야 수비를 진두 지휘했으며, 테이블 세터진으로서 작전야구를 100% 수행하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기록에 나타낼 수 없는 조직을 장악하는 카르시마는 소속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고,
9명 모두 하나가 되어 승리를 일궈낼 수 있었습니다.
선수 마지막을 친정이 아닌 삼성에서 마감한건 의외라고 생각됩니다.
삼성이 스타급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성적이 안 나왔던 것은 조직력이라는 점은 그 당시
누구나 알고 있었죠. 그래서, 구단에서는 해태에세 제일 까칠한 선수인 이순철 선수를 영입했고,
성적보다는 정신적으로 선수들을 뭉칠 수 있게 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순철 선수의 카리스마는 해태를 떠나서는 통하지 않았나 봅니다.
별 성과를 못 거둔채 이듬해 은퇴를 하게 되죠.
선수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으나 이 후 코치로서는 그리 좋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당시 서정환 감독이 있는 삼성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MBC-ESPN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서감독은 삼성 창단멤버였으나 유격수 포지션이
겹치는 관계로 해태로 트레이드되고, 은퇴 후 친정팀 삼성에서 코치생활을 하며 감독까지
오르고, 이때 이순철 선수를 코치로 기용하게 되죠.
(선수들 윽박지르는 지도 스타일이 서로 잘 맞는 듯 하네요.-_-)
하지만, 선수 혹사 문제로 준수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이순철
코치도 함께 자리를 내놓게 됩니다.

이듬해 트윈스로 자리를 옮겨 코치를 하다 감독직까지 맡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감독을 맡고
있던 트윈스의 성적은 처참했죠.
더군다나 특유의 자율야구를 바탕으로 한 신바람 야구까지 깐깐한 성격으로 억누르려 한다는
구단과 체질 개선을 위해 내보낸 트윈스의 상징 이상훈, 김재현...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팬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찍히고, 결국 옷을 벗습니다.

이 후 해설자로서 많은 화제를 뿌리며 활약하시다 (안티 많이 만드셨죠. ^^;) 신생팀
수석코치로 들어가게 됩니다. (히어로스 감독이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를 만든 이광환
감독이라는게 특이하군요. ^^;)
트윈스에서의 악몽(?)을 뒤로 하고, 새로 맡은 팀의 코치직. 현대 시절 화끈한 공격과
막강한 마운드 약점하나 없었던 팀이 이런저런 소문에 동계훈련도 제대로 소화 못하고
쓸려다니면서 망가질대로 망가졌을 텐데요.
이런 팀에 깐깐한 이순철 코치가 딱 제격인듯 합니다. 선수들을 독려하고 악바리 근성을 심어줄
수 있는 능력은 이 코치가 최고라고 생각되네요.
(개인적으로 트윈스 팬으로서 사실 그리 썩 그다지 이순철 코치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_-)


타격 코치 : 김응국 (66년생)

-영원한 롯데맨 호랑나비 김응국 코치

1988 - 2003  롯데 자이언츠 선수
2004 - 2005  롯데 자이언츠 코치 
2006            현대 유니콘스 타격 코치
2008            우리 히어로즈 타격 코치

1991 올스타 MVP
1992 골든글러브 수상
1996 골든글러브 수상

팬들에게는 그리 화려해보이지는 않지만,  언제어디서라도 꾸준한 성적을 내주는 감독이
제일 좋아하는 유형의 선수였던 김응국 코치.
롯데에선만 선수생활을 한 롯데맨으로 92년 롯데 우승시 박정태, 공필성, 염종석 등과 함께
혁혁한 공을 세운 선수였습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케이스로 88년,89년 모두 14경기에
나와 22 1/3 이닝을 소화하면서 승패없이 5.24의 기록을 남기고, 89년 시즌 중반 부터 타자로
전향해

통산 타율 0.293  안타 1452  타점 667  득점 744  도루 207

를 기록하며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가장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를 만들죠.
역대 타격 19위, 안타 10위, 도루 11위 등 기억해주는 이들에 비해 굉장한 성적을 올렸습니다.
90년대 중반이후 만년 꼴찌를 도맡아 하던 팀인걸 감안한다면, 그의 능력은 단순 수치
그 이상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저평가된 선수죠.

컨텍능력과 빠른 발까지 가졌으니 어떤 타순에 갖다놔도 자기 몫은 하던 선수였습니다.
테이블 세터진, 클린업 등등 현재 최고의 3번타자감인 한화의 클락 선수와도 비견되겠네요.

2003년 은퇴 후 롯데에서 코치를 시작하지만 신임 강병철 감독이 들어오면서, 현대로
자리를 옮기게 되죠. 롯데팬들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박정태와 더불어 팬들이
아끼는 선수가 고향팀에서 코치를 못하고 다른곳으로 가다니..
어쨌든, 현대 2군 타격 코치를 하다 이번 시즌부터 1군으로 올라와 타격 코치를 맡고 있습니다.
함께 선수생활을 하던 전준호 선수와 코치와 선수로 만나는 군요. ㅋ
(요즘 펄펄 날고 있는 전선수를 보면 부러운 생각도 들지 않을까 하네요)

예전처럼 막강 타력을 자랑하는 타선은 아니어서인지 유일한 200점대(293점) 득점을
보이고 있는 우리 히어로스. 팀의 타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호랑나비 김응국 코치가 내년 어떤 모습으로 팀 방망이를 변화시킬지 기대됩니다.


투수 코치 : 조규제 (67년생)


- 투구 외에는 오른손을 쓴다는 조규제 코치. 현대 시절.

1991 - 1997  쌍방울 레이더스
1998 - 2000  현대 유니콘스
2001 - 2002  SK 와이번스
2003            현대 유니콘스
2004 - 2005  기아 타이거즈
2006            현대 유니콘스 2군 투수코치
2008            우리 히어로스 1군 투수코치

1986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우수투수상
1986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우수투수상
1990  체육훈장 기린장
1991  프로야구 정규리그 신인왕

2005년 조용준이 깰때까지 최소 경기(207경기) 100세이브를 올렸던 클로저 조규제 코치.
(음..조용준 선수 미국에 있다는데 언제 오는건지..)

야구 명문 군산상고 출신으로 구대성과 함께 아마야구의 최강 좌완이라 불리던 조규제 선수는
신생팀이었던 쌍방울에 1차 지명으로 프로데뷔를 하게 됩니다.
데쥐 첫해에 방어율 1.64  9승(7패) 27세이브 를 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화려한 시작을
하게 되죠. 이때 소화한 이닝이 무려 142 1/3. 전문 클로져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롱릴리프역활을 했다고 보는게 맞겠군요.

이후 쌍방울의 뒷문을 확실하게 막아주는 최고의 마무리로 활동하게 되는데요. 97년 현대로
현금 트레이드 되기전까지 올린 세이브가 무려 28승(34패) 133세이브나 됩니다.
팀 타선이 그리 탄탄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확실하게 승리를 지켜주었던
명실공히 팀의 수호신이었죠. (타선에서 김기태가 치고 조규제가 지키는 승리방정식!)
96, 97 쌍방울에서의 마지막 시즌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조규제의 활약이 당연 컸습니다.

현대로 트레이드 되던 98년 정민태와 정명원, 위재영등 이미 막강 마운드가 구축되어 있는
상태에서 조규제의 합류는 화룡점정이었죠.
비록 마무리 대신 중간계투와 원포인트로 보직을 변경했으나, 결국 그해 우승을 거머쥐게
되는 데 한 몫 단단히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은 그의 팔도 무디게 만듭니다. 그 후 옛 동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던 sk에서
반짝 활약을 한 후, 현대, 기아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은퇴를 하게 됩니다.

빠른공을 뿌리지만 공에 위력은 크게 없어서(기아 한기주처럼) 장타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매번 우위를 보이며 타자들을 요리했죠.
최근 히어로스 팀에 마무리가 부실하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일본 세이브왕 다카쓰를 영입하긴 했지만.. 9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최고 마무리 조코치가
국내 선수를 하나정도 육성해주었으면 하네요.


배터리 코치 : 장채근 (64년생)


 - 91년 한국시리즈 우승. 유명한 사진이죠. ^^

1986 - 1994  해태 타이거즈 선수
1995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1996 - 2001  해태 타이거즈 배터리 코치
2002            기아 타이거즈 배터리 코치
2004 - 2005  기아 타이거즈 수석 코치
2007            기아 타이거즈 육성군 코치
2008            우리 히어로스 배터리코치

1988  골근글러브 수상
1991  한국시리즈 MVP, 골근글러브 수상
1992  골근글러브 수상


우리 히어로스 경기를 TV로 보다보면 덕아웃을 비출때 덩치가 산만하고, 배가 불룩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가 80년대 선동열과 함께 막강 해태를 이끌었던 장채근 배터리 코치죠.

100kg에 육박하는 거구를 가진 그는 해태의 황금기를 선동열과 함께 일궈내 무려 6번이나
우승을 경험한 포수로, 그 6번중에 3번은 직접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에서 투수를 들어올리는
감격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한국시리즈 MVP는 포수로서 그가 유일하다)

통산 타율 0.228  안타 452  타점 285  홈럼 97

9시즌 동안 그가 보여준 성적은 그리 특별한게 없어보일뿐더러 좀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타점과 홈럼도 한시즌 반짝 거린것에 불과하고, 타율도 0.111까지 내려간 적도 있을만큼
들쑥날쑥이었고...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투수리드에 있습니다.

레전드 선동열 선수를 비롯해 10승 투수를 무려 6명이나 가졌던 92년 그 해 주전 포수가
바로 그였죠.
투수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여 볼배합을 짜고, 최대한 편안하게 투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그의 마인드 덕에 경험이 적은 젊은 선수나, 제구력이 불안한 선수,
쉽게 흔들리는 선수들이 맘 편하게 마운드에서 공을 뿌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투수리드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노지심' 이라는 별명처럼 거구에 한없이 푸근한 인상으로 투수가 흔들릴 때마다
안심시켜주며 바로 잡아주는 장채근 선수를 유독 투수들은 좋아했을 거고, 그런 편안함이
곧 마운드에서 자기가 가진 모든걸 던질 수 있게 해주었을 겁니다.

말술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몸관리에 소홀해 일찍 슬럼프가 찾아왔고, 결국 은퇴까지
하였던 장채근 선수는 은퇴 후 어린 호랑이들을 키우기 위해 해태 육성코치로 있다가 신생팀
배터리 코치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아마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건 포수였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