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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각 프로야구 팀별 코치진 - 삼성

어제 (26일) 경기에서 트윈스가 삼성을 20-1 로 대파했군요.
올 시즌 최다 점수로 최대 점수차..여기에 안치용 선수의 사이클링 히트까지..
역대 13번째 4년만에 기록한거라고 하니 대단합니다. 구단에서는 94년 서용빈 선수 이후 처음이네요.

이렇게 큰 점수차로 져버리면 그 경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 선수들의 사기에도 문제가 많죠.
4강에 들기 위해 사투를 버리고 있는 삼성. 선동열 감독 속도 타드러 가겠네요.


수석코치 : 한대화 (60년생)



-언제나 타석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역전타를 쳤었던 한대화 코치.

1983 - 1985  OB베어스 선수
1986 - 1992  해태타이거즈 선수
1993 - 1996  LG트윈스 선수
1996 - 1997  쌍방울레이더스 선수
1998 - 2003  동국대학교 야구팀 감독
2003 - 2004  삼성라이온즈 타격코치
2004            삼성라이온즈 1군수석코치

1982   대통령배 타격상
1988   프로야구 올스타전 MVP
1991   골든글러브  8회
2000   스포츠서울 프로야구 올해의상 특별상


역대 최고의 3루수, 해결사라는 별명이 정말 잘 어울렸던 한대화 코치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려 일약 국민스타로 발돋움한
그다. 결승전에는 지금의 감독으로 있는 선동열 감독이 약관의 나이로 선발 호투를 하고
김재박 감독이 동점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켰던 경기이기도 하다.
이 날 이후 한코치는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선수 시절내내 클러치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 그를 영입한 OB베어스는 당연 그에게 거는 기대가 굉장했을 터. 하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 현 sk감독은 간염으로 남들보다 피로를 빨리 느끼는 그가 훈련을 제대로 소화 못하자,
미운털을 박아버리고. 첫해 타율 0.272  안타 85  타점 44 등 평범한 수준에 머물자 그를 곧
트레이드 명단에 올려버리게 됩니다.

해태로 트레이드 된 86년부터 92년까지 그는 최고의 5번타자로, 3루수로 명성을 쌓아가게되죠.
골든글러브로 92년 송구홍이 탄것을 제외하면 무려 7회-역대 최다 수상-를 기록하게 되고,해태도
6회나 우승을 거머쥐는 명실공히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세월이기는 장사 없다고...93년들어 그는 홈런과 타점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노쇠화의
기미가 보이고, 그 틈을 타 트윈스는 '미스터 엘지'로 최고의 인기였던 좌완 거포 김상훈과
맞트레이드 제안을 하게 됩니다. (당시 엘지는 송구홍이 군문제로 3루 자리가 공석이었죠)
좌타자가 마땅히 없던 해태로서는 한대화의 트레이드를 허락하게 되고, 한대화는 줄무늬 옷을
입게 되죠. (물론 당시 홍연우라는 걸출한 유망주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트레이드되던 이듬해 한대화 선수는 유지현, 서용빈, 김재현 3총사와 함께 4번타자로 활약하며
우승을 일궈냅니다.^^ 그 후에도 한대화 선수는 젊은 선수들로 이뤄진 팀에 구심점이
되어주면서 상대팀에 상당한 압박감을 주는 중심타자로 활약하다 쌍방울로 트레이드 된 후
은퇴하게 됩니다.

현역 시절 최고의 3루수로, 찬스때면 항상 터져주던 그의 방망이는 그 누가 모래도 엄지를
치켜세울 수 밖에 없네요. 지금은 해태 시절 함께 했던 김응룡 사장, 선감독과 함께 삼성을
이끌며 두번이나 우승을 일궈내는 공적도 쌓게 되져.


타격코치 : 이종두 (62년생)



-엣날 사진이군여...-_-. 힘 하나로 쭉쭉 뻗는 타구를 쳤었던.

1985 - 1996  삼성 라이온즈 선수
1997 - 1997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2002 - 2005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06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06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공.수 모든면에서 안정적인 기량을 뽑냈던 이종두 코치.
삼성에서만 10여년을 보내고 쌍방울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97년 한대화 코치와 쌍방울에서 한솥밥을 먹었군요)

93년 양준혁, 김성래, 강기웅과 더불어 중심 타선을 구성했던 이종두 코치는 빨랫줄 같은
타구로 당시 쟁쟁하던 삼성 타선에서 5번을 책임졌습니다. 고교시절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할 만큼 능력이 좋았습니다.
전,후기로 나뉘던 시절 우승을 한 후 선동렬과 이종범의 해태에 눌려 한번도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삼성 라인업은 막강했죠.

통산 타율 0.270  안타 845  홈런 105  타점 438 으로 부상으로 인한 공백이 없었다면 600타점도
가능했을겁니다.

심정수, 박진만 등 핵심 요원들이 많이 빠져있는 요즘 삼성이 예전 같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지키는 야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마운드도 불안하고..
2006년 선수가 아닌 코치로 우승 반지를 차지한 이종두 코치가 어떤 유망주들을 길러내어 삼성을
예전에 막강한 팀으로 만들지...


투수코치 : 조계현 (64년생)



-김광현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팔색조 조계현 코치.

1989 - 1998  해태 타이거즈
1998 - 1999  삼성 라이온즈
2000 - 2001  두산 베어스
2002            기아 타이거즈 투수코치
2003 - 2004  기아 타이거즈 2군투수코치
2005.10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

1993, 94  다승 1위
1995       평균 자책 1위

팔색조라는 별명을 얻으며 현란한 변화구로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던 조계현 코치.
'역전의 명수'라는 말을 유행하게 만든 군산상고출신으로 그 주역 중에 한명이었다.

89년 잘나가는 해태에 입단 하여 현란한 변화구로 방어율 2.84  7승 9패 4세이브을 올리며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물론 아마야구 시절 명성과 그에 따른 구단과 팬들의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2.84라는 방어율과
프로 무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대감을 키우기에 좋은 성적이었습니다.
결국 이듬해 14승을 거두고 탈삼진을 무려 130개나 잡는 등 화려한 날개를 펼치게 되었죠.

통산 126승을 거둘만큼 걸출한 투수 출신인 그는 해태 시절 무려 5번이나 우승 반지를 차지하고,
2001년에는 두산에서 한번 더 우승하는 등 총 6번의 우승을 경험한 대투수이기도 합니다.
(통산 승수 5위 기록 중)

비록 구단의 열악한 자금 사정으로 현금4억에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어 8승  14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방출되지만, 두산에 입단하여 한국시리즈에서 활약 하는 등 노장으로서 역활을 제때
해주었고, 그 댓가로 또 하나의 우승 반지를 차지하게 됩니다.

역횐전 하는 스크류볼을 잘 구사하였고, 너클볼도 던졌다는 소리도 들을 만큼 다양한 구종으로
좌우코너웍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여기에 화쓴한 승부욕으로 정면승부를 즐겨 팬이 항상 많았죠.

은퇴 후 당연히 기아 코치로 후진 양성에 힘쓰다 2005년 김응룡, 선동렬 등 영광을 함께 하였던
전우들의 손짓에 이끌려, 삼성에 합류하게 됩니다. 선 감독과 함께 지키는 야구로 배영수 같은
에이스와 국보급 마무리 오승환를 만들게 되지요.


수비 코치 : 류중일 (63년생)



-명품 수비의 원조. 류중일 코치

1987 - 1998  삼성 라이온즈 선수
2000            삼성 라이온즈 수비코치

1987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유격수부문
1990  일간스포츠 프로야구 감투상
1991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유격수부문


과거 유격수 자리는 타격보다는 수비가 더 중하게 여겨졌던 자리였습니다.
근래 들어 이종범, 유지현 선수 처럼 잘 치고, 잘 달리는 선수들이 맡기도 하지만, 트윈스의
권용관 선수처럼 1차 기준은 수비였죠. 그 역활을 가장 충실히 해주었던 선수 류중일.

데뷔 첫 해부터 11연타수안타라느 사고를 치고, 주전자리를 꽤차면서 신인임에도 불구 당시
김재박 선수를 밀어내고, 골든글러브를 차지합니다. 그 후 이종범이 나타낼까지 그는 최고의
유격수로 강기웅과 더불어 명품 수비를 보여줍니다.

수비력에 비해 아쉬운 공격력으로 김재박 감독과 이종범 선수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되지만,
당시 유격수에게는 큰 공격력을 기대 안 했다는 점과 막강 타선이었던 삼성에서는 수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 역활을 120% 해주었기에 팀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보배였습니다.
99년 은퇴 후 역대 삼성 선수로는 유일하게 은퇴식을 했을 만큼 영원한 삼성맨이기도 한 류코치.

하지만, 그에게도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우승 반지였습니다.
선수 시절 무적 해태에 밀려 한번도 우승 경험을 못 해보다 결국 선수가 아닌 코치로 반지를
받게 되었네요.

박진만 이라는 걸출한 유격수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서 고교 유망주 김상수를 입단시키며
그 뒤를 잇게 하고 있다는데요. 전, 현 최고의 스승들을 두고 있는 김상수 선수가 얼마나 활약을
펼칠지 기대가 됩니다.


배터리 코치 : 강성우 (70년생)



-sk 주장 시절 양준혁의 안타 신기록때 축하 꽃다발을 주던 강성우. 이듬해 코치로 갔죠. ㅋㅋ

1989 - 1991  국가대표 선수
1992 - 2000  롯데 자이언츠 선수
2001 - 2005  SK 와이번스 선수
2006            삼성 라이온스 코치

청소년 대표르 거쳐 대학 선수로 그리고 국가대표까지 지낸 엘리트 코스르 거쳤던 강성우 코치.
92년 롯데 1지명을 받으며 프로에 입단하여 첫해 9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03  타점 31  안타 61 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게 된다.

공격형 포수인 임수혁 선수와 더불어 번갈아 가며 롯데 안방을 책임져 주었던 수비형 포수로
경기를 읽는 센스와 투수 리드, 근성 등이 장점이었습니다. 92년 우승을 비롯해 95, 99 준우승을
일구며 롯데의 최전성기를 이끌게 됩니다.

90년대 후반 들어 뇌쇠 기미를 보이다 트레이드를 통해 들어온 최기문에게 포수자리를 넘겨주고,
sk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박경완 선수의 부상 공백을 매우며 안정적인 운영을 해주었고, 주장으로
정신적 지주를 맡으며 김성근 감독의 혹독한 훈련에 지친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게 되지요.

박경완 선수가 부상에서 복귀한 후 실질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벤치 리더로 팀 분위기를 이끄는 등 모범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이런 그의 모습 때문인지 어찌보면 아무 연고도 없는 삼성이 그를 영입했는지도 모릅니다.
현재 국대급 진갑용 선수와 투수 리드와 경기 운영이 탁월한 현제윤 선수가 있지만, 왠지 화끈한
불방망이 포수가 아쉽기도 하네요.